임영웅 10주년 고양 공연, 숫자보다 눈길을 끈 무대의 구성
임영웅이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4일부터 6일까지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연 ‘IM HERO10-THE STADIUM 2 IN GOYANG’이 막을 내렸다. 사흘 동안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총 9만5798명이다. 임영웅은 이 무대로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서는 기록도 더했다.
총 관객 수를 사흘로 나누면 하루 평균 3만 명을 조금 넘는다. 매일 그만한 인원이 스타디움을 채웠다는 뜻이니 10년 활동의 성과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수치다. 다만 이번 공연에서 더 오래 곱씹게 되는 것은 관객 수가 아니라 무대에 올린 노래와 사람들의 구성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스페셜 디지털 앨범의 신곡에는 팬들이 들고 온 사연이 담겼다. 풍물패와 손잡은 전통 연희의 에너지가 있었고, 데뷔곡을 10년 뒤의 목소리로 다시 부른 리메이크도 나왔다. 무대에는 실용음악과 대학 후배 35명도 올랐다. 서로 다른 요소지만 모두 임영웅 한 사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바깥의 목소리를 무대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과거 활동을 정리하는 결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확장에 가깝게 읽힌다. 아래에서는 시간 순서 대신 그 확장의 방향을 짚어 본다. 팬의 사연을 노랫말로 바꾼 과정, 전통과 현대를 맞붙인 시도와 달라진 보컬, 그리고 후배와 팬에게 자리를 나눈 태도다.
‘부디 행복해질 것’, 팬의 피켓이 임영웅의 노랫말이 되기까지
이번 신곡 가운데 탄생 배경이 가장 눈에 띄는 곡은 ‘부디 행복해질 것’이다. 작사는 임영웅, 작곡은 안영민이 맡았다. 출발점은 공연장에서 만난 팬들이었다. 멀리 해남 땅끝마을에서부터 해외에서까지 팬들이 들고 온 피켓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적혀 있었다.
임영웅은 그 사연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메모해 두고 기억했다가 결국 한 곡의 노랫말로 엮어 냈다. 팬이 건넨 이야기가 가수의 창작물이 되고, 그 노래가 다시 팬 앞에서 불리는 순환이 만들어진 셈이다. 사연을 읽고 감동하는 것과 그것을 곡으로 완성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점에서 이 곡의 무게가 남다르다.
제목 ‘부디 행복해질 것’은 문장 끝이 지시하듯 맺어져 있다. 하지만 읽을수록 사연의 주인공들을 향한 바람에 가깝다. 남의 사정을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안부를 묻고 응원을 건넬 수는 있다는 정서가, 여러 사람의 사연을 모아 쓴 곡의 성격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가사를 직접 쓴 가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무대 위에서는 작곡가 안영민에게 박수를 보내 달라고 관객에게 청하는 장면이 있었다. 신곡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몫만 내세우지 않고, 팬들의 사연에 선율을 입힌 협업자를 직접 호명한 것이다. 노래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는 사실을 관객과 나누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번 스페셜 디지털 앨범이 전반적으로 경쾌하고 산뜻한 결을 택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10주년 기념작이라면 지난 시간을 갈무리하는 묵직한 분위기를 앞세울 수도 있었지만, 임영웅은 일상적인 감정에 가까운 곡들로 방향을 잡았다. 팬들의 생활에서 길어 올린 사연이 창작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과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모이세’와 ‘미워요’, 10년 사이 넓어진 임영웅의 목소리
‘모이세’는 이번 신곡 가운데 무대의 스케일이 가장 컸다. 사극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제목에 국악적인 색채를 입혔고, 풍물놀이패와 협업해 북청사자놀음 같은 전통 연희의 에너지를 무대로 가져왔다. 전통 소품과 퍼포먼스가 가득한 가운데 임영웅의 비주얼은 지극히 현대적이어서 대비가 한층 뚜렷했다.
변화는 눈보다 귀에서 먼저 느껴졌다. 그동안 익숙하게 들어온 목소리보다 짱짱하고 선명한 발성이 전면에 나왔다. 이 발성이 판소리에서 온 것인지 뮤지컬식 접근인지, 아니면 10년 동안 목소리를 넓혀 온 결과인지는 현장 감상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곡의 성격에 맞춰 목소리의 쓰임새를 달리했다는 점은 분명하게 전해졌다.
한 팬은 “내가 알던 임영웅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모이세’를 오래 기억에 남을 무대로 꼽았다. 한 가수를 오래 지켜본 팬일수록 익숙한 모습을 확인할 때만큼이나 낯선 면을 발견할 때 큰 반가움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전통 소재를 지금의 대중음악 무대에 어떻게 올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사례를 남긴 무대이기도 하다.
새로운 목소리를 이야기할 때 데뷔곡 ‘미워요’의 리메이크도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8월 8일 데뷔곡으로 세상에 나온 이 노래는, 당시 가이드가 없어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다고 임영웅이 돌이킨 곡이다. 그 노래의 리메이크가 이번 고양 무대에서 처음 공개됐다.
10년 만에 다시 들은 ‘미워요’는 한층 웅장해진 편곡 위에서 후렴을 길게 뽑아 올리는 보컬이 중심에 놓였다. 부르는 법을 몰라 막막했던 신인이 이제는 같은 곡을 자신의 호흡으로 풀어내는 가수가 된 것이다. 같은 공연에서 신곡 ‘모이세’의 달라진 발성과 데뷔곡의 재해석을 나란히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무대는 새 노래와 옛 노래 양쪽에서 목소리의 폭이 넓어졌음을 보여 줬다.
후배 35명과 대형 케이크, 임영웅이 10주년 무대에서 나눈 자리
이번 공연에는 실용음악과 대학 후배 35명이 함께했다. 임영웅은 자신의 데뷔 10주년 기념 스타디움 무대에서 후배들에게 노래할 기회를 내줬다. 기념 공연의 주인공이라면 모든 순서를 자신의 무대로 채워도 이상하지 않은 자리다.
음악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하루 3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모이는 스타디움에서 노래한 경험은 쉽게 얻을 수 없는 일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무대 시간을 나눠야 가능한 기회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공연의 한 코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앞서 작곡가를 호명하던 모습과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무대에는 10주년을 알리는 대형 케이크도 등장했다. 공연 중 임영웅은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이 영웅시대 덕분이라고 말했다. 팬들 덕분에 좋은 동료를 만나 관계가 넓어졌고, 지금 경험하는 새로운 세계 역시 팬들이 열어 준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말에 “울컥해서 울었다”는 팬도 있었다. 팬의 사연에서 노래를 만들고, 전통 연희와 손잡고, 후배에게 무대를 나눈 이번 공연의 짜임새를 떠올리면 그 감사 인사는 형식적인 인사말로만 들리지 않는다. 받은 것을 노래와 자리로 다시 돌려주는 방식이 공연 곳곳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차를 맞은 가수가 다음 걸음을 어디로 내디딜지도 이 방향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