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데뷔 10주년 콘서트, 데뷔곡으로 열고 ‘살아온 우리에게’로 닫다
가수 임영웅이 데뷔 10주년을 맞아 연 ‘IM HERO – THE STADIUM 2’는 고양스타디움에서 29곡으로 채워졌다. 곡 수만큼 눈길을 끄는 것은 곡의 순서다. 공연의 첫 곡은 2016년 발표한 데뷔곡 ‘미워요’, 마지막 곡은 ‘살아온 우리에게’였다. 10년의 출발점과 도착점에 해당하는 두 곡이 공연의 양 끝에 놓이면서 셋리스트 전체가 하나의 회고 구조를 갖췄다.
히트곡이 넉넉한 가수라면 스타디움 공연의 첫 곡으로 가장 화려한 대표곡을 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임영웅은 가장 오래된 곡을 골랐다. 대중 앞에 처음 내놓은 노래를 맨 앞에 두면 이어지는 모든 곡은 그 뒤에 쌓인 시간으로 읽힌다. 기록을 앞세우는 오프닝이 아니라 출발점부터 밝히는 오프닝이었다.
마지막 곡의 제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살아온 우리에게’는 노래의 대상을 나 한 사람이나 상대방으로 좁히지 않는다. 노래하는 가수와 노래를 듣는 관객이 하나의 호명 안에 함께 들어간다. 10주년 공연의 대미를 자신의 성취를 돌아보는 곡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함께 부르는 곡으로 채웠다는 점에서 공연이 어디를 향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임영웅은 공연을 마무리하며 영웅시대에게 글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나의 10년을 채운 건 시간이 아니라 당신이었어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이 글에서 그는 “다음 10년도 우리다운 시간으로 함께!”라고 약속했다. 마지막 곡 제목에 담긴 ‘우리’가 말로도 이어진 셈이다. 10주년 공연이 과거를 정리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의 시간까지 열어 두었다는 점도 이 메시지에서 확인된다.
임영웅 ‘인생찬가’, 마지막 곡이 공연 한가운데에 놓인 순간
공연 초반은 사랑의 여러 얼굴로 짜였다. ‘미워요’ 뒤로 ‘사랑은 늘 도망가’, ‘Can’t Take My Eyes Off You’, ‘모래 알갱이’가 이어졌고, ‘무지개’와 ‘사랑해 진짜’가 뒤를 받쳤다.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로 분위기를 끌어올린 다음에는 ‘그댈 위한 멜로디’, ‘들꽃이 될게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들의 블루스’가 차례로 나왔다. 제목에 ‘그대’와 ‘다시 만남’, ‘우리’가 잇따라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이 흐름 끝에서 울려 퍼진 곡이 ‘인생찬가’였다. 워터스크린과 화려한 조명, 분수쇼가 어우러진 무대 위에서 곡은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규모만으로도 공연의 정점이라 할 만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 곡의 위치가 특별했다. 오랫동안 임영웅 공연에서 긴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해 온 곡이 이번에는 셋리스트 한가운데에 배치됐다.
마지막 곡이던 노래를 중간에 두면 공연의 문법이 달라진다. 종착지 역할을 하던 곡이 중간 지점이 되는 순간 관객은 끝났다는 감정 대신 아직 많은 곡이 남았다는 기대를 안게 된다. 팬들이 가장 익숙하게 여기던 클라이맥스를 일부러 앞당긴 선택이어서, 10주년 공연이 지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자리만은 아니라는 신호로도 읽힌다.
실제로 이어진 곡은 ‘Baila’, ‘또또’, ‘New York’이었다. 앞선 구간과는 결이 다른 곡들이 나란히 놓이면서 공연의 분위기가 한 번 방향을 틀었다. 대표적인 마무리곡 직후에 이런 전환 구간을 배치한 것은 후반부를 향한 에너지를 이어가려는 구성으로 보인다. 관객 입장에서는 정점을 지나고도 공연이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는 경험을 한 셈이다.
임영웅 ‘부디 행복해질 것’, 경복대 합창단 35명과 나눈 무대
열기가 오른 구간 다음에는 호흡이 한 단계 낮아졌다. ‘온기’를 시작으로 ‘비가 와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이어졌다. 제목만 살펴봐도 날씨와 세월, 오랜 부부의 시간 같은 일상에 가까운 소재가 연달아 놓여 있다. 앞의 흥겨운 구간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공연이 삶의 이야기 쪽으로 내려앉는 구간이다.
이 구간의 마지막에 ‘부디 행복해질 것’이 놓였다. 이 곡에는 임영웅의 학교 후배인 경복대학교 합창단 학생 35명이 함께했다. 가수 한 명이 부르는 곡이 아니라 합창단의 목소리가 더해진 무대였다. 스타디움이라는 큰 공간에서 열린 10주년 기념 공연에 모교 후배들을 초대했다는 점은 공연의 구성 요소 중에서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곡의 배치도 의미가 읽힌다. 노부부의 세월을 다룬 곡 바로 뒤에 이제 막 사회로 나갈 학생들과 같은 곡을 불렀기 때문이다. 긴 시간을 지나온 사람의 이야기에서 앞으로 시간을 쌓아갈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세대가 다른 두 목소리가 한 무대에서 만나는 장면은 10주년이라는 숫자에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더했다.
10주년 공연의 주인공이 자신의 성취를 소개하는 시간을 줄이고 후배들에게 무대의 일부를 내준 선택이기도 하다. 곡 제목이 ‘부디 행복해질 것’이라는 점을 함께 놓고 보면,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오히려 누군가의 앞날을 비는 노래를 택한 셈이다. 29곡 가운데서도 가수와 객석, 후배의 관계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임영웅 이동차와 ‘모이세’, 스타디움 끝 객석까지 닿은 동선
‘A bientot’와 ‘ULSSIGU’로 다시 분위기를 띄운 공연은 후반부에서 동선을 바꿨다. 임영웅은 ‘나는야 HERO’와 ‘보금자리’를 부르며 영웅시대 응원봉으로 꾸민 이동차에 올라 멀리 있는 객석의 팬들을 만나러 갔다. 스타디움 공연에서는 무대와 먼 자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가수가 직접 이동하는 연출로 그 거리를 좁히려 한 장면이다.
이동 중에 부른 ‘보금자리’ 뒤로는 ‘Home’이 이어졌다. 두 곡의 제목은 모두 돌아가 머무는 장소를 가리킨다. 이어 ‘HERO’가 울리며 공연은 다시 한번 객석과 호흡을 맞췄다. 곡마다 따로 보면 별개의 노래지만 이동차가 객석을 도는 시간에 이 곡들이 연이어 배치되었다는 사실은 관객에게 건네는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다.
‘모이세’에서는 북청사자놀이와 풍물놀이 24명이 함께했다. 전통 연희 팀이 합류하면서 스타디움은 노래를 듣는 공연장에서 여럿이 어울리는 놀이판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합창단 35명에 이어 전통 연희 팀 24명까지, 이번 공연은 가수 혼자 끌고 가는 무대가 아니라 다양한 협연자가 각자의 자리를 갖는 구조로 짜였다.
그 뒤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거쳐 ‘살아온 우리에게’로 공연은 막을 내렸다. 각 곡의 자리에 어떤 뜻을 담았는지는 임영웅만 알겠지만, 데뷔곡으로 연 시작과 마지막 곡을 한가운데로 옮긴 선택, 후배와 전통 연희 팀의 합류, 객석을 향한 이동 동선까지 눈에 보이는 사실만 모아도 이번 공연의 설계가 읽힌다. 29곡은 가수의 목록이자 객석을 향한 순서표였다.